홍차와 나의 첫 만남은 어렸을 때 예식장 뷔페에서다. 그전까지는 보리차, 녹차나 커피만 알았지 홍차가 뭔지도 몰랐다. 호기심에 한 번 마셔본 홍차는......웩 뭔 맛인지 알수도 없고 씁쓸하기만 했다. 그 뒤로 20살 전까진 홍차를 마셔본 적이 없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 우리 학교 자판기는 모든 음료수가 일괄 500원인 대신 그 종류가 적었는데 거기에 항상 '데자와'라는 게 있었다. 콜라, 녹차, 오렌지쥬스, 커피같은 일반적인 음료수 사이에 동등한 비중(네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을 차지하고 있는 희끄무레한 색의 데자와캔을 보며 항상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이나 그때나 데자와는 마이너한 음료수라 난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한 번도 그 캔을 본 적이 없었다. 선배들이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눌러 수상한 그 캔을 잘도 뽑아마시는 걸 보고 난 항상 생각했다. 저건 대체 뭘까? 써 있는 걸 읽어봐도 대체 뭔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로얄밀크티. 홍차와 밀크의 절묘한 만남이라니. 먹는 걸 고르는데 신중했던 나는 항상 그 캔을 피해 다른 음료수를 뽑아 마시곤 했다. 그러나 데자와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뭔가에 홀려 결국 운명의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텅! 하고 캔이 떨어지고, 처음으로 맛본 밀크티는.....너무 이상했다. 캔 색깔 만큼이나 쓰여진 문구 만큼이나 알 수 없는, 이상하고 밍밍한 맛이었다. 청량감도 없고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쓰지도 않았으며 입맛을 한 번에 사로잡는 화려한 향도 없었다. '망했네.' 역시 생각대로군. 그렇다고 이미 산 음료수를 버릴 수도 없어서 나는 그걸 그대로 들고 수업에 들어갔었다. 두 모금, 세 모금. 마실 수록 괜찮다고 생각했다. 밋밋하고 낯설 뿐이지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한 캔을 다 마실 무렵 나는 이미 데자와의 마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딱히 맛있진 않아,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데자와를 뽑고, 뽑고 또 뽑았다. 데자와는 뭔가 맛을 알 것 같으면서도 너무 밍밍해서 알 수 없는 느낌이어서, 마시면 마실 수록 더 마시고 싶어졌다. 데자와는 데자와를 부르고...아마 지금까지 내가 학교에서 뽑아 마신 데자와가 500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들어갈 때 항상 데자와를 뽑아마셨으니. 내 대학생활은 언제나 데자와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여름엔 박스로 시켜서 마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날 사로잡았던 음료수. 덴마크 홍차라떼. 밀크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덴마크우유의 역작인 이 홍차라떼는 데자와처럼 시판용 밀크티 고유의 밍밍함이 있으면서도 더 풍미가 있었다. 대신 가격은 1200원. 우유종류라 유효기간이 짧아 박스채 살 수도 없었고, 편의점에서 밖에 팔지 않아 할인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한 일년 간은 데자와의 자리를 이 홍차라떼가 차지했다. 일부러 사기 위해 먼 편의점까지 가야 하고, 가격도 데자와에 두 배가 넘었는데도 난 일년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홍차라떼를 마셨다. 집에는 팩이 쌓이고 쌓여 산을 이룰 정도였다-_-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비극적인 결말이 찾아왔다. 내가 자주 다니던 동네 편의점에서 홍차라떼가 사라졌다. 어쩔 수 없지 뭐. 한 동안 나는 더 멀고 먼 다른 편의점까지 가서 홍차라떼를 마셨다. 그리고..그곳에서도 홍차라떼가 사라졌다. 홍차라떼는 절판된 것이었다. 그 뒤로 어디에서도 홍차라떼를 볼 수 없었다. 온 동네를 다 뒤지고 다녀도, 다른 동네에 놀러갈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리번거려도..마지막에 마신 홍차라떼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마지막이란 걸 몰랐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망연자실함이 되살아난다. 나는 다시 데자와를 마셨지만 이미 데자와는 홍차라떼의 빈자리를 메워주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동안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절판된 지 3개월 정도 지났던 어느 날 밤에 홍차라떼가 꿈에 나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매일 지나다니던 곳처럼 익숙하면서도 정확히 어디라고는 할 수는 없는 삼거리가 배경이었다. 왼편에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홍차라떼가 있었다. 정확히 세 개였다. 나는 너무 흥분해서 홍차라떼를 다 사려고 했는데 거기는 카드가 안 되는 곳이었다. 현금이 없었던 나는 아줌마에게 지금 돈을 뽑아올테니 그때까지 이 홍차라떼를 아무에게도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다시 갔을 때, 홍차라떼는 이미 다 팔린 후였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줌마에게 땡깡을 부렸다. 팔지 말라고 했는데 왜 팔았냐고. 사람을 왜 그렇게 못 믿으시냐고.. 깨어보니 참 황당하고 부끄러운 꿈이었다.
그리고 많은 시일이 지난 후, 나는 집에서도 밀크티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카페에서 알바할 때였나, 같이 일하던 언니가 우유에 홍차를 담가서 설탕을 넣고 타마시는 거였다. 언니 그게 뭐에요? 하니까 밀크티라고 했다. 마셔보니 과연 밀크티였다. 데자와나 홍차라떼보다 맛은 훨씬 떨어졌지만 그래도 확실히 밀크티였다. 그 뒤로 나는 집에서 밀크티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우유를 데워서 립톤홍차를 우리고 설탕을 넣었다. 그렇게 하니 너무 텁텁하고 홍차도 잘 우러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지방이 많은 우유라서 그런가 하고 멸균우유로 해 보았는데 너무 싼 맛이 났다. 어떻게 하면 데자와나 홍차라떼같은 밍밍하고도 매력적인 맛을 만들 수 있을까? 데자와의 물탄듯한 밍밍한 맛..바로 그거였다. 물이었다. 일단 물을 조금 끓여 홍차를 충분히 우린 다음 데운 우유를 부으니 그럴싸한 맛이 났다. 우유와 물을 섞는다는 건 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지만 물의 비율을 더 높이니 더 맛이 괜찮아졌다. 그게 정말 일반적으로 밀크티를 만드는 레시피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이렇게 밀크티에 빠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이트로 홍차도 마시게 되었다. 역시 밀크티가 더 좋았지만 홍차도 괜찮았다. 처음엔 우유가 떨어졌을 때 스트레이트로 마시기 시작하다 어느 순간 부터는 그냥 그대로 마시는 게 더 좋아졌다. 뭐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물 마시는 것도 술 마시는 것도 좋다) 하루 종일 틈이 날 때마다 뭔가를 마시는데 돌이켜보니 그 중에 홍차를 마실 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았다. 밀크티는 달달하고 맛있지만 마시고 나면 입 안이 텁텁했고, 위가 약한 내게 커피는 독약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극적인 맛보다는 깔끔하고 고요한 풍미가 있는 맛을 선호하게 되고 내 몸과 잘 맞는 음식을 찾게 되다보니 홍차가 적격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허브티도 향긋하고 좋긴 하지만 홍차에 비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마 카페인이 전혀 없어서이지 않을까) 어제 단호박 꿀찜과 데친 브로콜리를 저녁으로 먹고 얼 그레이를 마셨는데 어찌나 속이 개운하고 깔끔하던지. 시작은 밀크티캔이었지만 결국 진짜 홍차와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몇 종류 맛보지 못했는데 워낙 역사가 깊은 차이니 여러 브랜드의 여러 제품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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