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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행이야기

베트남 성문화 베트남문화

시대별, 지역별 아오자이(Ao Dai) 변천사

베트남을 상징하는 ‘영원’한 문화코드 아오자이

베트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코드 ‘아오자이’(Ao dai)는 ‘웃옷’이라는 의미의 ‘ao’ 와 ‘길다’는 뜻의 ‘dai’가 합성된 단어로, 글자 그대로 상의가 긴 베트남 전통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베트남 역사 속에서 시대적 변천과정에 따라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며 진화, 발전해 온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형태의 아름다움과 디자인의 가변성에 힘입어 보편적인 복장으로 자리잡아 재료와 색상에 따라 예복, 근무복, 일상복, 여학생 교복 등으로 지금도 폭넓은 사랑받고 있다.

참고로 이전에는 남, 여 구분 없이 아오자이를 착용 했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일상 활동에 불편함을 느껴 점차 입는 횟수가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혼례나 제사 같은 특별한 행사나 광고에서만 어쩌다가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최초의 아오자이

가장 오래된 흔적은 응옥루(Ng?c L?), 호아빈(Hoa Binh), 호앙 하(Hoang Ha) 지역에서 출토된 북에 그려진 아오 트떤(Ao T? Than), 이는 3천년 전의 그림들 속에 나타난 아오자이의 원형으로 오늘날도 아오자이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즉, 베트남의 전설적인 영웅인 쯩 자매가 코끼리를 타고 중국 한나라 침략자들과 싸울 때 아오자이를 입었던 쯩 자매의 영웅적 행위를 기리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네폭의 아오자이, ‘Ao t? than’을 입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아오자이가 여성을 위한 국가의 전통 복식으로 자리잡긴 했지만 오랜 세월을 거친 베트남 역사에 비해 아오자이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은 편이다. 남쪽에서는 ‘아오야이’, 북쪽에서는 ‘아오자이’로 발음되는 이 옷은 색깔이나 형태에 따라 착용자의 나이 및 상태를 표시하기도 한다. 어린 여학생들은 그들의 순결성을 상징하는 순수한 백색을, 이후 결혼하기 전인 24-5세까지는 연약한 파스텔 색조, 그리고 결혼한 여자는 자주빛, 초록 등 강하고 부유한 색깔을 선호한다.

아오자이의 원형은 ?

현대 아오자이의 원형은 18세기에 이르러 중남부 지방을 장악한 윙푹코앗(Nguy?n Phuc Khoat) 영주가 찐 영주가 지배하는 북쪽지방 사람들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여성의 치마 착용을 금지하고 대신 바지를 입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대 아오자이 스타일의 시작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930년대부터다. 당시 화가 깍뚜옹(Cat T??ng) 옹이 서양식 스타일의 아오자이 ‘레무’(Le Mur)를 내놓으면서 현대식 아오자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이 옷은 완전히 서구식으로 재단, 봉제되어 폭넓은 소매와 연 잎 모양의 깃이 특징이었다. 특히 이 옷은 당시 최고 패션 잡지인 퐁호아(Phong Hoa)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어 새로운 개념의 아오자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서구 편향적이라 베트남 전통과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60년대 말, 주문 형 등장

이후 4 년후인 1934년에 이르러 유명화가인 레포(Le Pho) 옹이 ‘레무’의 개선에 나서 서구 편향적인 면을 줄이고 전통성과의 조화를 이루어 새롭고도 전통미가 있는 아오자이를 다낭 지역에서 선보여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전통과 서구문화를 조화하여 갖추어낸 이 아오자이야 말로 현재까지 이르는 베트남의 현대식 아오자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30년 동안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1960년에 이르러 유럽과 미국 패션의 영향을 받아 소매가 길고 바지 가랭이가 넓은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선 보여졌고, 60년대 말에 이르러는 개개인의 개성에 맞춘 개별 주문 스타일의 아오자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다양하게 디자인이 변화되어 갔다. 게다가 옷감도 다양해지고 색상 역시 다양한 변화가 가미되면서 각 부위에 다른 색을 넣어 다양하고 호화로운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가슴과 소매부분은 가벼운 레이스 종류를 활용하여 감각적인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꽃잎무늬가 자수된 원단을 선보여 더욱 고급스런 아오자이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값비싼 실크가 아오자이 원단으로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물결타고 세계로

보통 아오자이는 북부지방에서 보다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에는 이 옷이 일하는데 적절치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한동안 전통의상인 ‘아오자이’ 착용을 금지시킬 때도 있었다. ‘선정적이며 비생산적인 자본주의식 퇴폐복장’이란 이유가 그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전후 10년동안 아오자이는 베트남에서 아예 자취가 사라졌다. 한편 아오자이가 본토에서 홍역을 치르는 동안 해외에서 아오자이는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었다. 좁은 소매, 달라붙는 듯한 겉옷, 높은 깃, 바지의 화려한 꽃문양 등과 같은 아오자이의 독특한 요소들은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는 등 해외에서 오히려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영원불멸, 아오자이 부활

이후 베트남이 개방개혁의 물결을 타던 시절인 1989년 후에 페스티발에서 아오자이 패션쇼가 다시 열리면서부터 아오자이가 명예를 회복하고 베트남 사회전면에 재등장하게 되었으며,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장여성들이나 호텔 종업원들이 아오자이를 즐겨 입으면서 다시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아오자이는 단순한 베트남의 고착된 전통의상이 아니라 각 시대의 역사적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며 변천해 왔으며, 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스타일의 아오자이로 진화를 거듭해 나가고 있다.


베트남인의 개성과 멋, 까이무(모자)


영국 젠틀맨의 상징인 중절모, 호떡 모양의 납작한 유태인의 카파 (혹은 야르물케), 몽고의 말가이, 북구 산타크로스의 빨간색 고깔모자, 인도의 터번, 버선모양의 일본 전통모자, 한국의 갓과 패랭이, 베트남의 농라 (Non La; 고갈 형태의 밀집모자), 그리고 현대 젊은이들의 즐겨쓰는 야구모자에 이르기까지 모자는 세계각국의 문화적 특성과 성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특히 모자는 사람의 직업이나 지위를 직접 표현하거나 상징할 수가 있어서 보이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경찰관이나 군인 등의 경우 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갓은 곧 선비요, 패랭이는 보부상이다. 또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하면 머리에 어사화를 장식하고 멋지게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도 높은 실크 중절모를 쓴 젠틀맨 앞에서 평민들은 납작한 모자를 벗어든 채 눈길을 내리깔아야 했던 역사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인들이 즐겨쓰는 모자를 보면 이 나라의 기후와 문화적 특색, 심지어 민족성까지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호에는 베트남들이 즐겨 쓰는 ‘농라’와 ‘무’ 외에 역사적으로 베트남인들은 어떤 모자들을 써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베트남전통모자 ‘농라’

베트남인들은 전통적으로 빛을 가리기위해 꼬깔모자 형태의 베트남 전통밀집모자인 농라(Non La)와 대나무로 만든 우산, 오 (O)를 사용해왔다. 특히 농민들은 한 여름의 폭염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얼굴 전체를 수건 (Kh?n;‘캉’이라고 읽음)으로 가리고 다시 그 위에 농라를 푹 눌러 쓴 채 이글거리는 햇빛과 맞서 싸웠다. 이처럼 농민이나 노동자 등 일반 사람들은 볏짚으로 만든 모자 농라를 주로 사용했지만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보다 야자수 잎으로 만든 모자 ‘농라즈어’ (Non la d?a)를 쓰곤 했다.

근대 서양식 모자 ‘무’

한편 현대적 의미의 모자를 뜻하는 ‘무’ (M?)는 프랑스 식민시대부터 유럽에서 유입되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무’(M?)나 ‘농’ (Non) 모두 모자를 뜻하는 말이다. 즉 전통적으로 하노이 사람들은 모자를 ‘무’라고 하고 호찌민을 비롯한 남부사람들은 ‘농’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지금은 큰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 예로 오토바이 헬멧의 경우 ‘무바오힘’ (M? B?o Hi?m)이라고 해도 되고 ‘까이농’ (Cai Non)이라고 해도 다 알아 듣는다. 여기서는 편의상 베트남전통모자와 대비되는 근세기에 서양에서 유래한 모자를 ‘무’라고 부르기로 한다.

서양식 모자 ‘무’가 언제부터, 누가 무슨 이유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18세기 무렵 서양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일부 지식인들이 하나 둘씩 이 서양식 모자 ‘무’를 쓰기 시작했다.


한-베 성명 호칭문화, 호뗀비엣남 (H? Ten Vi?t Nam)

베트남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성격, 풍속, 의식주 등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이 필요하다. 이번 호에는 특별히 베트남과 한국의 호칭문화를 비교해봄으로써 양국문화를 공통점과 차이점을 되집어보기로 하자.

베트남인의 성명은 성, 중간이름, 그리고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성씨 제도는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한자가 폐지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는 베트남인은 극소수이지만, 이름 뒤에는 한자의 의미가 숨어 있다. 베트남어는 성조 언어로서 6종의 높낮이를 가지고 있는데, 베트남 이외의 국가에서는 보통 이 복잡한 성조 부호를 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성 (H?; 호)

베트남인의 성씨 (약 100여개)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나, 남부의 일부에서는 참족계통에서 유래된 성씨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베트남화되어 구별하기 어렵다. 한국의 성씨와 비슷하게 상위권의 일부 성씨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넓다. 특히 가장 많은 성씨인 ‘Nguy?n 윙(중국어: 阮, 한국어: 완)’ 씨는 무려 그 비율이 38.4%나 된다. 이 성씨는 중국인(특히 남부)에게도 있으나, 그 비율은 베트남보다 훨씬 낮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베트남 성씨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Nguy?n(阮 윙; 38.4%)
2) Tr?n (陳 쩐; 11%)
3) Le (黎 레; 9.5%)
4)Huang/Hu?nh/Hoang(黃 후앙/후인/호앙; 5.1%)
5) Ph?m (范 팜; 5%)
6) Phan (潘 판; 4.5%)
7) V?/Vo (武 부; 3.9%)
8) đ?ng (鄧 당; 2.1%)
9) Bui (裴 부이; 2%)
10) đ? (杜 도; 1.4%)
11) H? (胡 호; 1.3%)
12) Ngo (吳 응오; 1.3%)
13) D??ng (楊 즈응; 1%)
14) Ly (李 리; 0.5%)


* 한편 한국에는 현재 약 250개의 성이 사용되고 있으며 각 성씨마다 한 개 이상의 본관이 있 다. 현재 10대 성씨 [김 (46%), 이, 박, 최, 정, 강, 조, 윤, 장, 임 등]가 한국인 전체인구의 약 64%를 차지하고 앞의 네 성씨가 그 절반을 차지한다.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상위 성씨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 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전개되기도 했는데 페미니스트 고은광순, 영화감독 이송희일, 영화제작자 김조광수 등이 일례다. 참고로 중국의 10위권 성씨 순위는 王(왕)-李(이)-張(장)-劉(유)-陳(진)-楊(양)-黃(황)-趙(조)-吳(오)-周(주) 등이다.

중간이름

미들 네임은 아이의 부모에 따라 매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선택되었는데, 여성의 경우는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거의 대부분의 베트남 여성은 ‘티’ Th?(氏)를 중간이름으로 가지고 있다. 한편 남성의 경우는 반 V?n, 흐우 H?u, 득 đ?c, 꽁 Cong, 꽝 Quang등이 많으며 보통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1) 세대 구분: 형제나 자매는 보통 같은 미들 네임을 붙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부모 대나 자식 대와 구별되었다.
2) 성씨의 세부 분류를 표시하기도 한다. “Nguy?n H?u”, “Nguy?n Sinh”(같은 윙 씨라도 중간이름으로 구별)
* 한편 한국 이름에는 서양식 이름에 보이는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이 없다. 그러므로 이 면에서 볼 때는 베트남 성명이 서양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인의 성명은 한 음절의 성과 두 음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 음절의 성명이 가장 흔하며, (가운데 음절이 미들네임은 아님) 그 다음으로 한 음절(외자)의 이름을 가진 두 음절 성명이 많고, 두 음절의 성으로 이루어진 복성의 경우에는 외자 이름인 경우가 많다.

이 름

베트남 이름에는 모두 고유한 의미가 있는데, 여성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형용사나 꽃 이름 [예- 호아 (Hoa;꽃), 란 (Lan;난초), 응옥 (Ng?c; 진주) 등], 남성에게는 부모가 그 아이에게 바라는 덕목이나 품성 등을 반영하는 이름 [예 - 득 (đ?c;德), 방 (V?n;文), 민 (Minh;明), 찌 (Chi; 志)] 등을 붙였다. 베트남인은 한국과 달리 보통 호칭할 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공식적인 경우에도 이름에 필요한 직함이나 경칭을 붙여서 호칭하는 것이 보통이다. 단 문서나 공식적으로 이름을 밝힐 때에는 성씨도 사용한다. 한편 여러모로 대조적인 남부와 북부 사이에는 호칭에서도 차이가 존재하는데, 과거의 북부 기혼여성은 성에 티 (Th?)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외 매우 유명한 몇몇 사람들은 ‘성+애칭’ 만으로 호칭되는데 베트남의 국부인 호찌민 (H? Chi Minh)을 ‘박호’ (Bac H?;호 아저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 한편 한국이름은 중국유교문화권의 영향으로 한자로 표기할 수 있다.(베트남인들은 자신의 성명을 한자로 표기할 줄 모름) 또한 1947년 이후 (금난새가 시초), 가람, 슬기, 푸름, 힘찬, 등 고유어로 된 이름들도 속속들이 생기고 있다.

베트남인 호칭의 예

현 베트남의 총리인 Nguy?n T?n D?ng ‘윙떵융’은 성이 ‘윙’, ‘떵’이 미들 네임, ‘융’이 이름이다.
공식적으로 그는 ‘미스터 융’(Mr. D?ng) 즉, 경칭 + 이름으로 호칭되며, 절대로 미스터 윙 (Mr. Nguy?n)이라고 하지 않는다. 즉 성명을 기재할 때는 우리나라와 마찬 가지로 성을 먼저 쓰고 이름을 나중에 쓰지만 호칭 시는 정반대다.
* 한편 한국인은 상대나 자신의 성씨를 묻고 답할 때, 일반적으로 ‘김’과 같이 단독으로 말하지 않고 ‘~김씨’와 같이 씨(氏)를 붙여 답한다.또한 타인에게 부모나 선생님의 성명을 말할 경우에는 “홍, 길자, 동자입니다”와 같이 이름의 성을 제외한 각 글자 뒤에 자를 붙여서 말하는 것이 예의다.


박호의 이름은 몇 가지 ?

아마도 베트남인 가운데 이름이 가장 많은 사람을 들라면 단연 박호 (Bac H?)다.
그는 1890년 5월 19일 생으로 출생시 부터 1969년 9월 2일 사망할 때 까지
십여가지 이상의 이름을 사용했다.
1) 윙떡탄 (Nguy?n T?t Thanh) - 어릴 적 이름
2) 방바 (V?n Ba) - 1911~19 년 프랑스 선박에 승선할 때
3) 윙아이꾸억 (Nguy?n Ai Qu?c) - 1919 ~ 23 년 베트남 애국동지회 활동시기
4) 쨍방 (Chen Vang) - 23년 6월 모스크바로 소비엣 국제 공산당 활동시기
5, 6) 리투이 (Ly Th?y), 브응 (V??ng) - 1924. 11. 11 중국 광주 거주 시기
7) 터우찐 (Th?u Chin) - 1928년 태국망명시절
8) 똥방서 (T?ng V?n S?) - 홍콩에서 영국경찰에 체포될 당시
9) 호광 (H? Quang) - 1938년 중국 팔로군 참가 시
10)린 (P.C Lin) - 중국 신문 기고 시
11)호찌민 (H? Chi Minh) - 1942. 8.13 베트남혁명무장세력과 연락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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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베트남인 A(28)씨. 경남 창원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주말이면,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모여... 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성문화도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성매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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